어릴 적에는 학교나 공터에 자라난 잡초들 사이에서 클로버 무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어느 계절에 잎이 돋기 시작하는지. 언제 즈음에 시드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늘 클로버 무리를 뒤적이며 네 잎을 찾아댔다. 네잎클로버는 세잎으로 자라야 할 클로버가 상처를 입어 변형된 것이라, 흔히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잎클로버는 행복의 상징이 되었고, 희귀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항간에 ‘작은 행복이 세 번 찾아오면 행운이 이루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는데 네 잎을 찾지 못하던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한편으로는 조그마한 잎사귀 하나 때문에 행운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작년부터였을까. 주변에서 다양한 형태의 네잎클로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네잎클로버를 전자기기의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두거나 디지털 사진첩에 저장을 해두는 것만으로도 효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제 실물을 가질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언제든 네잎클로버를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흔하던 세잎클로버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인형이 가득 놓여있었다. 수납장과 책상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음이 가장 잘 맞는다고 느껴지는 인형은 가방에 담아 피아노 학원이든 소풍이든 가리지 않고 데려 다녔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솜뭉치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목욕물에 함께 몸을 담그고, 줄곧 말을 건네며 듣지 못할 대답을 기대하기도 했다. 가끔은 친구였던 사람에게서 받은 인형을 바라보다가 애꿎은 기억이 떠올라 등을 돌려놓기도 했지만, 일방적으로 바라본 까만 눈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저마다의 역할이 주어지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 머리맡에 놓인 너희들에게도, 태어났으니 최소한 내 곁에 존재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길운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네잎클로버는 ‘네 개의 잎사귀’라는 조건을 충족한다면 행운이 되어주지만, 아주 작은 잎사귀가 단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더 이상 길운의 상징이 아니게 된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과 유물은 주로,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모습이 묘사되곤 한다. 길운의 상징들이 가진 양면적인 성질은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고 가치관을 환기시키는 데에 충분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인형에게 길운의 상징인 토템의 역할을 주어야겠다.
<2022년 겨울, 토템 이야기>